홍콩 최대 부호이자 부동산재벌인 리자청 창장그룹 회장은 어쩌면 속으로 웃고 있을지 모른다. 홍콩달러가 최악의 평가절하 사태를 맞으며 홍콩 증시가 이미 크게 꺾이고 부동산 시장도 위축될 수 있는 상황에서 그는 지난해 홍콩 부동산을 대거 처분했다. 폭풍우가 몰아치기 직전 전광석화처럼 대응한 것이다.

도대체 홍콩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지난 1월21일 홍콩달러 12개월 만기 선물가격은 7.88홍콩달러까지 치솟으며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평가절하 사태를 맞았다. 환 투기세력은 홍콩달러를 공매도하는 방법으로 거침없이 홍콩달러 약세에 배팅하며 홍콩 경제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웠다.

/사진=이미지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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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기세력을 방치했다가는 홍콩달러 평가절하가 급격하게 이뤄지며 걷잡을 수 없는 해외자본 이탈을 불러 홍콩증시가 위협받을 수 있다. 홍콩달러 평가절하는 부동산시장은 물론 물가상승으로 서민경제까지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 1998년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대통령을 하야시켰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도 환 투기세력의 인도네시아 루피화 공격이 발단이 됐다.
이제 홍콩 금융당국의 선택은 2가지다. 우선 금융당국이 시장에 개입해 환 투기세력과 정반대로 홍콩달러를 매수하고 달러를 판다. 아니면 금리를 인상해 홍콩달러의 급격한 평가절하를 막아야 한다. 하지만 2가지 대책 모두 홍콩 경제에는 독이다. 특히 금리인상은 이자 부담 증가 등으로 부동산 가격에 치명타를 날릴 수 있다.


◆홍콩 위기 전 부동산 매각

리자청 회장은 마치 이런 수순을 예견이라도 한 듯 2년 전부터 홍콩의 부동산을 조금씩 매각했다. 리자청은 평소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천하의 대세에 순응하는 자는 번영하고, 대세를 거스르는 자는 망한다."

그는 2013년 이래 홍콩 킹스우드긴자 쇼핑몰을 58억5000만 홍콩달러(8917억원)에 매각한 데 이어 지난해 4월에는 홍콩의 주상복합단지인 로하스파크도 시세보다 20% 싼 값에 팔았다. 홍콩 부동산 뿐 아니라 상하이· 난징· 충칭시 등 중국 본토에서 갖고 있던 빌딩이나 부동산도 대거 처분했다. 무한·청두시 일대 아파트단지와 토지도 팔았다. 2014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그가 이렇게 매각해 현금화한 본토와 홍콩 부동산만 800억위안(14조6700억원)어치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리자청은 지난 1월초 열린 한 연찬회에서 “홍콩은 올해 관광객이 크게 줄고 수출입 실적도 저조할 것”이라며 “호텔 수입도 떨어지는 등 다방면에서 사업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시아의 무역항이자 관광도시인 홍콩 경제가 주력 부문에서조차 좋을 것이 없다고 본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세계를 상대로 부동산 서비스를 제공하는 띠이타이핑은 지난해 말 홍콩 부동산 가격이 향후 1년 내 15% 이상 떨어질 수 있다고 예견했다. 스위스은행 중국홍콩부동산 연구소도 “홍콩 부동산 가격이 2017년까지 현재보다 25~35% 떨어지며 장기 조정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밝혔다. 리자청의 치고 빠지기가 얼마나 전광석화처럼 이뤄졌는지 단적으로 알려주는 대목이다.

◆중국 언론 리자청 비꼬기도

하지만 리자청이 부동산을 대거 처분하는 과정에서 잡음도 끊이지 않았다. 중국 관영언론으로 사실상 공산당 입장을 대변하는 인민일보와 경제일보는 부동산 재벌 리자청을 은근히 비꼬는 기사를 동시에 게재하기도 했다.

인민일보는 “중국 경제가 세계 경제에서 12% 이상을 차지하는 중량감을 갖고 있는데 일개 상인의 철수는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논평했다. 경제일보도 “자본은 이익을 극대화하는 곳을 찾기 마련이라며 별 것 아닌 것(리자청의 부동산 매각)에 놀랄 필요가 없고 자본의 흐름을 이성적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밝혔다.

리자청이 중국이나 홍콩이 아닌 제3의 조세회피지역으로 본사를 이전할 것이라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리자청은 이같은 언론 비판에 자극을 받았는지 올 초 100만 홍콩달러(1억5500만원)의 연봉을 내걸며 자신의 연설 및 서한 전문 비서를 공개 모집하기도 했다.

◆매각대금으로 유럽에 대규모 투자

그렇다면 리자청이 부동산을 판 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리자청은 중국과 홍콩 부동산을 팔아 만든 시드머니로 아직 양적완화의 끈을 놓치 않은 유럽에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부터 지난해까지 리자청의 창장그룹은 영국의 기반시설투자를 중심으로 정보통신과 생명공학 등 11건에 걸쳐 1868억 홍콩달러(약 25조6200억원)의 해외투자를 성사시켰다. 여기에는 영국 전력공급 회사와 상수도 기업, 천연가스 기업 등이 포함됐다. 최근에는 비트페이와 인공지능, 빅데이터, 3D 프린터, 바이오, 온라인광고에 이르기까지 신흥 유망산업에도 손을 뻗치고 있다. 하나 같이 해외 투자 일색이다. 그나마 중국 본토에서 최근 투자한 기업은 비행기 리스사업을 벌이는 중항공업국제 정도가 눈에 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리자청 회장과 반대로 알리바바그룹 마윈 회장은 비슷한 시기에 홍콩의 고가주택을 잇따라 매입했다는 것이다.

마윈 회장은 지난해 홍콩 바커로드에 위치한 1099㎡ 규모의 초호화 저택을 12억3800만위안(2258억원)에 구입했고, 홍콩 미드레벨 지역의 고급 펜트하우스도 3억홍콩달러(457억원)에 사들였다. 특히 바커로드 주택은 ㎡당 112만위안(2억원)으로 세계에서 2번째로 비싼 집으로 통한다. 이 주택은 리자청의 최측근으로 불리는 리후이미 헝성은행 부회장 소유였는데 그는 마 회장에게 집을 팔아 9배의 시세차익을 올렸다.

이 때문에 홍콩 언론들은 리자청과 마윈 중 누가 최종 승자가 될 지 주목된다는 가십성 기사를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리자청의 승부수는 단순히 흘려볼 일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개인용 주택을 매입한 마윈과는 차원이 다르다고도 지적한다.

홍콩 경제계 일부에서는 “리자청이 비범한 투자 감각으로 홍콩과 중국 경제의 위기를 내
[특파원 리포트] 홍콩 팔고 유럽 산 '중국의 유대인'
다보고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중대한 경영 조치를 취했다”며 “ 주주나 투자자들에게 칭송을 받을 일이지 도망자라고 비난 받을 일은 아니다”고 밝혔다.
‘사기 전에 미리 팔 생각부터 한다’ 는 투자 격언을 평생 철칙으로 삼고 산다는 리자청 회장. 그는 “투자를 하기 직전 내 생각의 99%는 최악의 경우에 어떻게 대처할지를 상정해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유대인이라는 푸젠성 객가인 출신인 그의 선택이 이번에도 들어맞을 지 지켜볼 일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20호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