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성과주의 확산’을 추진한다. 기본급보다 성과급의 비중을 높이고 집단평가 대신 개인별 실적평가를 통해 각자의 성과에 따른 연봉을 지급하겠다는 게 골자다.

최근 금융당국은 금융공기업에 성과주의를 우선 도입한 후 민간 금융회사에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이에 기획재정부가 지분을 50% 이상 보유한 기업은행과 산업은행 등을 대상으로 직무분석 결과를 분석하고 성과주의 임금체계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계획이다.


하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다. 지난해 말까지 내놓기로 했던 금융위의 가이드라인은 감감무소식이다. 게다가 국책은행인 기업은행과 산업은행에 선도적인 도입을 주문했지만 해당 은행은 노조 반발에 부딪혀 협상이 지지부진한 상태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개혁 현장점검 성과보고회’에서 금융개혁 추진현황 및 향후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고범준 기자
임종룡 금융위원장이 지난해 12월21일 서울 중구 전국은행연합회에서 열린 ‘금융개혁 현장점검 성과보고회’에서 금융개혁 추진현황 및 향후 일정을 설명하고 있다. /뉴시스 고범준 기자

◆기업·신한 노조, 총파업 '임박'
금융권에 따르면 기업은행은 조만간 노사 공동 태스크포스(TF)를 마련하고 성과주의 임금체계도입을 논의할 예정이다. 기업은행은 조만간 노사가 협상하는 자리를 만들고 17%인 성과급 비중을 30%로 높이는 방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졌다.

기업은행은 노조와 합의를 서두르는 모양새다. 금융위가 이르면 1분기 성과주의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실행계획을 받을 계획인 만큼 서둘러 성과제 도입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기업은행은 15대 노동조합이 출범한 후 성과주의 도입에 강력히 반대해 노사 갈등이 확산될 조짐이다.

나기수 기업은행 노조위원장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는 성과제는 조직의 발전을 저해하고 직원간 신뢰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파업을 불사해서라도 성과제를 저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의 중앙노조인 금융산업노조도 같은 입장이다. 최근 금융산업노조는 성명서를 내고 금융위의 성과연봉제 도입계획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김문호 금융산업노조위원장은 “조합원 10만명을 대표해 은행권에 성과제 도입을 반드시 막을 것”이라며 “금융노동자의 생산성과 권익을 저해하는 노동탄압은 35개 전 금융지부가 맞서야 할 과제”라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새롭게 들어선 노조 집행부와 개인별 성과제도 도입에 이견을 보이고 있다. 신한은행은 집단 성과평가 등에서 부분 성과주의를 채택했지만 올해 직무별로 성과주의를 확대하는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신한은행 노조 관계자는 “성과주의 반대와 핵심성과지표 평가제도의 획기적인 개선 등을 공약으로 내세워 취임했기 때문에 성과주의에 결사반대 입장을 고수할 것”이라며 “과도한 성과주의 압박이 가해질 경우 파업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나머지 우리·KEB하나·KB국민은행도 성과주의 도입과 관련 노사가 협상을 진행 중이지만 험로가 예상된다. 우리은행은 이달 안으로 ‘근로조건 개선 마련을 위한 TF’를 구성하고 노사 합의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은행 측은 성과주의 도입에 노조를 설득하는 분위기지만 민영화 등 노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어 신속한 합의안 마련을 낙관하기 어렵다.

KEB하나은행도 당장 성과제를 도입하기에 무리가 있다. KEB하나은행은 오는 6월 전산통합 후 영업점 개편과 함께 통합노조 선거를 진행한다. 구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의 통합에서 진통을 겪었기 때문에 두 은행의 직급체계 일원화, 노조의 통합에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KB국민은행도 성과제 도입에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고 직원들의 성과를 판단하는 자가진단서비스도 중단한 상태다. 국민은행 노사는 정해진 기간 안에 승진하지 못할 경우 기본급을 동결하는 페이밴드 확대와 개인성과제 도입을 재논의할 계획이다.

[포커스] 금융권 성과제, 열쇠는 누가 쥐고 있나

◆성과제, 인사·교육에 반영해야
금융전문가들은 은행권의 성과제 도입을 둘러싼 노사 갈등을 해결하려면 보수체계뿐 아니라 평가와 인사체계, 교육프로그램 등 다양한 측면에서 성과제 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승진 등 인사고과에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연봉체계 개선은 노조와 합의가 필요하지만 인사고과를 조정하는 것은 경영진의 고유권한이기 때문에 노조 파업 등의 우려가 없다. 또한 팀의 성과에 무임승차하던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승진을 위해 노력하는 자극제 역할을 할 수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NH농협은행은 이달 말 우수한 성과를 낸 직원을 일찍 승진시키는 발탁인사를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직급별 평균근속연수와 무관하게 실적이 우수한 직원은 승진시켜 성과를 보상할 예정이다. 농협은행의 발탁인사는 연차에 따라 직급과 연봉이 오르는 호봉제를 유지하면서 성과제를 도입한 사례로 주목받을 전망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농협은행이 승진으로 보상을 차별화하면서 성과주의 문화를 확산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며 “금융당국이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기 전에 각 은행별로 직원들의 반발을 최소화할 수 있는 성과제 도입방안을 단계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밖에 금융위원회의 조속한 가이드라인 마련을 요청하는 목소리도 높다. 통상 은행은 임금개혁을 추진할 때 조건이 세분화돼 있어 기준이 될 만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직원들이 성과를 높이기 위해 경쟁한다는 데 반대할 경영진이 누가 있겠냐”며 “자체적인 임금체계 개편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염두에 둬야 할 부분이 많기 때문에 기준이 되는 금융당국의 가이드라인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19호에 실린 기사입니다.